“성폭력·학대”… 순희씨, 40년 전 ‘수풀원’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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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5.06. 오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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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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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학대 공론화나선 황순희씨
국민청원 올렸다 되레 고소당해
검·경 “중요 부분, 객관적 사실 합치”
올해 예순살이 된 황순희씨는 어린이날이 되면 마음이 더 쓰라려온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당한 학대로 생긴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사과는 받지 못했고, 진실은 외면당했다는 생각에 상처는 더욱 곪아갔다고 한다.

어린이날 100주년이 된 5일 순희씨는 악몽 같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나는 상처밖에 없어서 지금도 너무나 괴롭고 힘들다”고 했다.

1970~1980년대 수풀원 내부에서 촬영된 사진. 26명의 어린 아이들은 서로를 '자매'라고 부르며 생활했다고 한다. 황순희씨 제공

순희씨 출생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순희씨가 확인한 입소카드에는 그가 부산에서 보자기에 쌓인 채 경찰에게 발견됐으며, 이후 경기도 광명에 있는 ‘수풀원’이라는 보육원에 보내졌다고 한다. 이곳에 맡겨진 26명의 여자 원생들은 서로를 ‘자매’라 불렀고, 부모 대신 자신들을 품어준 설립자 미국인 선교사를 ‘할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하지만 순희씨가 11살이던 1973년쯤 A씨가 관리자로 오면서부터 보육원 분위기는 일순에 바뀌었다. 순희씨를 비롯한 당시 원생들은 “A씨가 신체적 정서적 학대는 물론이고 성적 학대까지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순희씨도 성추행에 시달리다가 아무에게도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수풀원을 탈출했다고 한다. 고교 졸업장이 없던 순희씨는 식모(가사도우미) 일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 줄 알았던 기억은 40년이 되도록 암울한 그때에 머물러있었다. 애써 외면하려 가족처럼 지내던 자매들과도 수풀원을 나온 이후 왕래를 끊은 상태였다. 그러다 2020년 우연한 기회에 몇몇 자매들과 연락이 닿았고 “사실은 40년 전 A씨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다른 원생들의 얘기를 듣게 됐다. 순희씨는 “다른 언니들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만 괴로웠던 게 아니다’라는 생각에 괘씸한 마음이 들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순희씨는 늦게라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가해자로부터 최소한 사과는 받아야 어릴 적 새겨진 상처가 아물 것만 같았다. A씨를 수소문해 직접 찾아가 따졌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올려 억울함도 호소했다.

하지만 A씨는 순희씨의 주장을 완전히 부인했다. 오히려 순희씨의 국민청원을 문제 삼으며 그를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순희씨는 “피해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가해자가 뉘우치지도 않고 모든 것을 피해자한테 뒤집어씌우려 했다”고 토로했다. 고소당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기도 해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당당히 맞서기로 했다. 변호사를 선임해 경찰 조사에 응했다. 경찰은 “그동안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순희씨는 “다들 무지해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답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황순희씨의 피의자 신문조서. 경찰이 "왜 그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고 묻자 "다들 무지하여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답한다.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황순희씨 제공

순희씨는 지난 1월 검찰로부터 ‘혐의없음(범죄인정안됨)’ 판단과 함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처분 통지서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순희씨의 피해 진술이 구체적이고, 다른 수풀원 원생들의 진술도 일치한 점 등이 고려됐다.

앞서 경찰의 판단도 같았다. 성남 분당경찰서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작성한 글의 내용은 사실이거나 사실로 믿을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여지며 달리 참고인(다른 원생들)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만한 사정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A씨 학대 행위들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오래전 만료됐지만, 명예훼손 혐의 유무를 따져보던 경찰과 검찰 모두 원생들의 피해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다고 본 것이다.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황순희씨의 피의자 신문조서 마지막 부분. 순희씨가 수풀원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자필로 밝히고 있다. "엄한 처벌을 받게 하고 싶다"고 적었다. 황순희씨 제공

순희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풀원’ 사건을 공론화하려 준비 중이다. A씨는 현재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인 고아권익연대와 기독교반성폭력센터까지 나서 순희씨를 돕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연대와 센터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진상규명 요구에 나서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순희씨는 “반드시 진실이 드러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원생들 “닥치는 대로 차였다” “성적 학대도”

당시 수풀원 원생들은 A씨의 학대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보육원에서의 피해 사실을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왔지만, 피해 사실이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용기를 낸 것이다.

1970~1980년대 수풀원 내부에서 촬영된 단체 사진. 수풀원 원생들은 보육원에서의 피해 사실을 공유하며 뒤늦게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황순희씨 제공 . 황순희씨 제공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수풀원 출신 B씨는 “나는 몸에 항상 상처와 멍 자국을 안은 채 살아야만 했다”며 “A씨의 손에는 항상 몽둥이가 들려있었다”고 회고했다.
“닥치는대로 머리와 몸을 걷어 차였어. 허구한 날 피 흘리며 쓰러졌고, 엄살을 피운다며 짓밟히기도 했지.”
B씨는 이때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만성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머리에는 폭행 당해 생긴 상처가 남아있다. 또 다른 원생 C씨는 “눈이 많이 오던 날 각목으로 엉덩이를 맞다가 넘어졌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받지 못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B씨는 “배고픔을 견디려 개밥을 먹고 쓰레기통을 뒤져 과일 껍질을 찾아 먹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A씨의 아내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옷을 벗겨 알몸으로 만든 뒤 허리에 개 줄을 묶어둔 장면을 봤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원생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성폭력이 시작됐다는 진술도 여럿 나왔다. 다만 성폭력 범죄 특성상 피해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공개적으로 발언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3년 가까이 성추행을 당했던 한 원생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고, 지금은 정신요양시설에 입소해 있다고 다른 원생들이 전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생존해 있는 피해자 25명 전원에 접촉해 9명으로부터 구체적인 피해 진술을 받았다. 일부 피해자들과는 심층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B씨는 “언젠가는 수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는 희망을 늘 버리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A씨는 사실관계 자체가 틀리다며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는 A씨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사무실로 찾아갔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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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정치부 김판 기자입니다. 정치권 이슈를 폭 넓게 취재합니다. e메일로 제보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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