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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원 병원비 벌려고 12시간 일" 19살 되자 낭떠러지 내몰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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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한 번에 2만원씩이고, 엑스레이(X-ray)나 CT 검사까지 하면 8만원도 나가요. 한 달에 20~30만원을 병원비로 쓰고 있어요. 부모님이 있는 친구들과 달리 지원받을 곳이 없어서 그게 제일 막막하죠.”

 자립준비청년들이 베이킹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자립준비청년들이 베이킹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태어나자마자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자라온 박진혁(19)씨는 올해 성인이 되면서 시설을 나왔다. 신장 수술을 한 그는 보육원에 있을 때는 병원비를 지원받았지만, 퇴소 이후 혼자 병원비를 감당한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하루 12시간 일을 한다는 박씨는 “보호 종료를 선택하고 시설에서 나온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광주에서 갓 성인이 된 18세, 20세 청년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모두 성인이 돼 아동양육시설을 나온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이었다. 취업난과 주거비 상승으로 청년의 독립 시기는 점점 늦춰지지만 자립준비청년은 성인이 되는 동시에 맨몸으로 사회에 던져진다.

“산재 처리 방법 몰라 퇴사하기도”

아동복지법 등에 따르면 보호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자립준비청년으로 분류돼 시설에서 퇴소한다. 최근 본인 희망에 따라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지만 정부의 관리 하에 있는 경우는 드물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 1만2256명 중 1만786명(88%)이 시·도 관리 대상이 아니다. 애초에 정부가 관리 대상으로 12%를 목표치로 잡았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은 기본적인 생활에 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상당수가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바로 취업을 하는데, 독립할 준비가 충분치 않다. 김영후(19)씨는 “시설에서 나올 때 금융교육, 집 구하기 강연을 들었지만 자세하게 알기는 어려웠다”며 “(지금 사는) 공공주택 계약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고2 때 보호 종료를 선택한 김모(22)씨도 “주변에는 회사에서 일하다 다쳐도 어떻게 산재 처리를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몰라 결국 회사 요구만 들어주다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마다 자립 수준이 제각각인데 지원 정책은 취업에만 맞춰져 있는 것도 한계다. 올해 경기의 한 대학에 진학한 김씨는 “20살 때부터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자립준비청년은 다 취업을 해서 진학 준비나 지원책을 몰랐다”며 “공부를 하면서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무서웠고,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지적 기능, 우울증…“시설 밖 관계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충남 아산 희망디딤돌 충남센터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충남 아산 희망디딤돌 충남센터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보호 종료 후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A씨(22)는 시설 퇴소 후 고시원 생활을 거쳐 공공주택으로 독립했지만, 한동안 매주 밥을 먹으러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늘 함께 지내던 보육원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우울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그는 “퇴근 후 캄캄한 방에 들어오면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다”며 “게임에 접속해서 같은 시설에 있던 친구들을 만나야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호종료아동 중 50%가 자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경우는 자립이 더욱 어렵다. 경계선 지적기능을 가진 김모(20)씨는 고교 졸업 후 기업 인턴십에 참여했지만 실수가 잦아 결국 정직원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막막했던 김씨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지원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카페 창업이라는 꿈이 생겼다.

지난해 2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남아동옹호센터와 창원대학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상남도 내 40개 시설 아동 중 약 34.1%가 경계선 지적기능으로 추정된다. 이미호 경남아동옹호센터 팀장은 “(보호 시설로 오는 아동들은) 성장 시기에 가정에서 적절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반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기도 한다”며 “시설에서 일자리를 연계해도 1~3개월 안에 그만두는 걸 많이 봤다”고 말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금은 만기 퇴소를 해야 받을 수 있는 지원들이 많다 보니 보호 아동이 시설에 머무르는 기간이 평균 10년을 넘어갈 정도로 장기화되고 있다”며 “보호 아동이 시설에 있을 때부터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변 어른과의 관계나 네트워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현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는 “책임복지가 가장 필요하다”며 “경제적 지원도 정말 필요하지만 그보다 사소한 무엇이라도 물어볼 곳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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