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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아권인연대
댓글 0건 조회 482회 작성일 22-10-1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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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손자영 | 자립준비청년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심심하게 돌아가는 보육원 생활에서 언니, 동생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노래 부르던 ‘쎄쎄쎄’는 장난감이 없어도 서로를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놀이였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좀 더 커서 <신데렐라> 동화책을 읽고 난 뒤에는 부모님이 없어 계모의 구박을 받고 고생하는 신데렐라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신데렐라와 더불어 내가 읽었던 동화 속 주인공인 들장미 캔디, 미운 오리 새끼, 콩쥐팥쥐의 콩쥐, 성냥팔이 소녀는 모두 부모가 없었다. 그 동화책들을 보면서 왜 주인공들은 나처럼 부모가 없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어쩐지 주인공에게 더 마음이 갔다. 동화책 속 비운의 주인공들이 마치 나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책장 끝이 닳도록 동화책을 수십, 수백번씩 읽었다. 주인공과 함께 힘들어하고, 함께 안도하고, 함께 행복해했다. 그렇게 동화 속 주인공들과 위로를 주고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한번은 읽고 싶은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쓰는 글짓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흥부전>을 택했다. 어쩐지 나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주인공들이 구박을 받거나 괴롭힘을 받는 것이 싫었다.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받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놀부처럼 나쁜 짓을 하다 나중에 벌받지 않으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뻔한 권선징악의 교훈적인 글 대신에, ‘왜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는지’ 주장하며 흥부를 열심히 옹호하는 글을 썼다. 그때의 나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동화 속 주인공들을 보면 어쩐지 힘을 주고 싶은 아이였던 것 같다.

학교 교과서를 보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가족은 주로 엄마, 아빠, 동생으로 구성돼 있지만 나의 가족은 한명의 엄마와 여러명의 친구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름 앞에 붙는 성이 달랐다. 내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한 차이였다. 어느새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모르게 의기소침해지고 주변 눈치를 보게 됐다.

 

 자라면서 신데렐라 노래와 동화책 속 비운의 주인공들, 그리고 교과서가 다루는 ‘정상 가족’을 통해 매 순간 내가 타자화돼왔음을 깨달았다. 부모 없는 불쌍한 아이로 말이다. 신데렐라는 프랑스어(Cendrillon·상드리용)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라는 뜻의 단어라는데, 부모 없는 아이는 궂은일을 도맡을 수밖에 없는 걸까. 그런 의구심 속에서 나 같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힘을 주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미디어 인식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가 자립준비청년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소비하는 사례를 알리고, 실태조사나 패러디 일러스트, 토론회 등을 통해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활동이다. 다르게 자란 게 틀린 일은 아니라고 우리 스스로를 북돋워주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한번쯤 달리 생각해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살면서 보육원에서 살았던 이들을 만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보육원에서 자란 이들 스스로 보육원 출신임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 30%는 보육원에서 자란 사실을 주변에 밝히지 않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왜냐고? 보육원에서 자란 것을 이야기하면 괜한 편견이 생길 것 같아서,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질 것 같아서, 불합리한 대우를 당할까봐서다. 익숙한 동화책 스토리에 의문을 가지고, 괴롭힘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님을 얘기해주며 자립준비청년을 보통의 청년처럼 평범하게 대해줄 그런 세상을 꿈꿔본다. 그런 세상에서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자립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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